이태헌 <& Credit>, <Archiving+> 비평글

 이태헌 작가의 작업은 해시태그로 시작되어 해시태그로 마무리된다. 작업실의 벽면에는 작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사용한 단어들이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붙어 있다. 광주문화재단 미디어 레지던시 1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Archiving +> 영상에는 지난 10년 간 거쳐 갔던 작가들이 “미디어 아트란 무엇인가요?” 라는 작가의 물음에 해시태그를 답으로 달아서 영상으로 전시되었다. 해시태그는 게시물의 분류와 검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메타데이터이다. 해시 기호(#) 뒤에 단어나 문구를 띄어쓰기 없이 붙여 쓴다고 해서 해시태그라는 이름이 붙었다.1) 그런데 작가의 작업실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 적힌 낱말형식의 작가노트, 미디어 영상에 흘러나오는 키워드, 그리고 실제 웹 공간에서 사용되고 있는 해시태그가 모두 동일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해시태그는 점차 비대해지는 온라인 정보 공간에서 콘텐츠의 검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붙인 태그이다. 여기에는 콘텐츠에 대한 자기 판단과 함께 검색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명명 키워드가 장착되어 있다. 그러므로 해시태그는 낱말, 단어, 키워드, 시구, 인용구 등의 다른 텍스트와는 달리 언제나 다른 이들로부터 존재가 파헤쳐지기를 바라는 일종의 타자의 시선이 항상 배경 맥락으로 존재한다. 만약 이름 붙이는 자가 콘텐츠가 방대한 웹 우주에서 미아로 남길 바란다면 해시태그는 붙여지지 않을 것이다.

 

 작업실 한 쪽 벽면에 ‘art’로 시작한 포스트잇 작업 노트는 “‘무조건 예뻐야해’_마감, 마감, 마감” / ‘문화/예술’ –‘왜 예술을 하는가?’ / ‘Story?’ - ‘예술의 이유’ (·······) 등으로 이어진다. 분절된 단상과 아이디어들은 작업의 형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Archiving +> 에서는 참여 작가들이 제공한 미디어 영상과 함께 작가의 답변이 해시태그 형식으로 흘러나온다. 1기 진시영 작가(2012)의 경우 “나에게 미디어 아트는 일상이다”라는 답변과 함께 #사람, #에너지, #흐름, #휴머니티 등의 해시태그들이 흘러나오는데, 이 해시태그들은 그 자체로는 맥락과 주체를 관통하기 힘든 ‘포스트 모더니즘적’ 나열 감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신도원 작가의 답변 “나에게 미디어 아트란 현실과 가상이 하나가 되는 것” 에는 #추상, #미디어아트, #현대미술 등의 해시태그가 뒤따른다. 여기에서 역시 두 가지의 맥락이 엿보이는데, 하나는 N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자아 정체성을 해시태그로 명명할 때 보이는 단편적인 세계관이고, 두 번째는 미디어아트를 스스로 규정하는 데 엿보이는 모호성으로, 이것은 아직도 현대미술 장르에서 미디어아트가 가지고 있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는 단초로 역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태헌 작가의 전작 <& Credit>은 좀 더 작가의 개인적인 동기와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광주문화재단 미디어 레지던시 과정에서 제작되었으며, 프로젝션 맵핑 설치 작품이다. 5m*2m*1m 사이즈의 골대처럼 생긴 구조물이 있다. 이 구조물에 촘촘히 매달려 있는 7,000 피스의 작은 거울들이 있다. 구조물에는 작가가 만든 세 개의 영상이 틀어져 나오고, 구조물에 매달린 거울들은 그 영상을 반사시키고 주변 거울에 투사시켜 작가만의 독특한 프로젝션 맵핑을 구성한다. 영상은 Prime Water, Seeds of Zeitgeist, Time Paradox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영상은 작가가 레지던시 기간 중 재단 직원들과 나누었던 대화에서 영감을 받은 내용, 미디어 아트에 대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개념 등이 담겨 있다. 구조물에 매달린 거울 하나하나는 이를테면 작업을 구성하기 위해 동원된 모든 인력, 영감의 원천이 된 뮤즈, 그리고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창작 네트워크 안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앤드 크레딧’은 크레딧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창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엔딩 크레딧’과 차별화 하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스스로 “문화/예술 수호자들을 향한 존경을 담은 작품이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도 문화/예술이 계속해서 흐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모든 관련 행정가, 스텝, 작가, 그리고 관객분들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의 예전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힌트들이 존재한다. 작가는 2015년 좀비를 소재로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4박 5일 동안 잠도 못 자고 고생했던 스텝들에게 임금을 제공하지 못했고(사전 협의 하에 이루어진 사항),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고 한다. 이 경험은 작가에게 트라우마(trauma)로 남아 있으며, 작가는 여기서 ‘크레딧(credit)’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의 크레딧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부터 감독, 그리고 작은 역할의 스텝까지 이름을 기록하며 영화의 말미에 영광스럽게 등장한다. 작가는 영화현장에서의 경험과 이번 레지던시 경험에서도 재단의 행정 직원들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작가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 이런 크레딧에 대한 작가의 단상은 이번 작업의 해시태그로 작용하게 된다.

 

 종종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허무감에 빠져드는 작가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작가의 작업실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의 ‘긍정’과 ‘미래적 회복’이라는 단어는 이런 작가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긍정’의 사전적 정의는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이다. 이것은 상황과 사건에 대한 낭만적이고 장밋빛 해석을 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칭하는 선입견에 대한 놀라운 반전이다. 즉, 긍정은 사물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운명이 부정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에 따라 충분히 덜 나쁜 것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좋은 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작가가 이야기 하는 작품의 쓰임새이자, 작가로서 작품 그리고 관객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2) 또한 운명론자인 작가는 이와 관련하여 <& Credit>의 시작을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에서 찾고 있다. 작가는 우주와 같은 세상과 웹상에 던져진 자신의 ‘현존재’를 의심하고, 이 의심은 오로지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도구로부터 구원된다. 작가는 종종 비관주의에 휘말리며 테트리스처럼 쌓인 작가노트 포스트잇의 밑바닥을 의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교류 맺는 사람과 사건, 사물들은 부정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미래적 회복’을 성취하게 된다.

 

조숙현 (미술비평가)

 

1) 출처 : 용어로 보는 IT (네이버 백과사전)

2) 작가노트 중 https://www.taeheonlee.com/project-note-and-credit